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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in Movies

[영화 명대사] 79.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아련한 옛 유럽의 그림자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감독: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각본: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출연: 래이프 파인스 (Ralph Fiennes), 머래이 아브라함 (F. Murray Abraham)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 감독의 영화는 특별하다.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각 장면이 수채화나 유화작품이다. 조금만 지나치면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한계를 절묘하게 넘어가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다. 또 집착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화면 속 등장인물과 소품의 좌우 대칭과 균형을 강조한다.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다.

 

웨스 엔더슨이 만든 영화에는 가슴 한편이 먹먹해지는 노스탤지어가 담겨있다. 사실 노스탤지어는 내가 겪었던 과거의 일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아직 겪지는 않았어도 어딘가에는 있는 현상이나 사물에 대한 설명하기 어려운 막연한 그리움을 묘사할 때도 사용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도 이런 노스탤지어를 제대로 자극하는 영화다.

 

앤더슨 감독은 텍사스 출신의 미국인 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는 사라지고 있거나 잊혀가고 있는 옛 유럽의 노스탤지어가 스며있다. 영화의 이름에 헝가리의 수도인 부다페스트 (Budapest)가 들어가 있는 것도 그 증빙이다.

 

이 영화는 19407월 일제 강점기 시절 김광균 시인이 발표한 추일 서정(秋日抒情)의 시작 부분을 연상케 한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
포화(砲火)에 이즈러진
도룬 시의 하늘을 생각케 한다.
길은 한 줄기 구겨진 넥타이처럼 풀어져
일광(日光)의 폭포 속으로 사라지고
조그만 담배 연기를 내어뿜으며
새로 두 시의 급행열차가 들을 달린다.

 

일제 강점기 시절 희망 없는 세상에서 무력한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일도 쉽지 않았을 일. 답답한 마음을 멀리 있는 독일 나치에 점령당한 동유럽의 한 나라 폴란드의 망명 정부에 담아 동일시해 보려고 애쓰던 시인의 아련한 노스탤지어가 느껴진다.

 

웨스 앤더슨는 오스트리아 소설가 슈테판 츠바이크 (Stefan Zweig, 1881-194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섬세한 감수성의 뛰어난 소설가이며 동유럽을 사랑했던 츠바이크는 독일 히틀러에게 저항하다가 1940년 브라질로 피신한다. 2년 후 부인과 함께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그는 유럽을 그리워하며, 사라져 가는 유럽의 문화와 아름다움을 전하려 애썼다고 전해진다. 앤더슨 감독은 영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대사를 남겨 슈테판 츠바이크를 기린다.

 

Young Writer: A week later, I sailed for a cure in South America, and began a long, wandering journey abroad. I did not return to Europe for many years. It was an enchanting old ruin... But I never managed to see it again.

젊은 작가: 일주일 후에 나는 치료를 위해 남미로 출발해 길고도 정처 없는 여정을 시작했다. 나는 수년간 유럽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유럽은 파괴되었지만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그러나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영화에서는 성격은 괴팍하지만 호텔을 사랑하고 손님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호텔의 존재 이유 (raison d'être )를 지키고 빛내기 위해 애쓰는 구스타브 (Gustave, 레이프 파인스, Ralph Fiennes)다. 호텔에서 로비 보이 (심부름꾼)으로 일하다가 결국 호텔을 물려받는 제로 무스타파 (Zero Moustafa, 머래이 아브라함, Murray Abraham)가 호텔의 전성기와 전쟁, 쇠퇴기를 겪어나가며 호텔을 살리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그림처럼 묘사된다.

 

이 호텔은 실존하는 호텔은 아니고 감독이 체코의 그랜드 호텔 퍼프 (The Grandhotel Pupp, https://www.pupp.cz/en)를 모델로 하고 있다.

 

구스타브는 호텔에서 각양각색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대해야 하는 제로 무스타파에게 사람의 속성에 대해 함축적으로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M. Gustave: Rudeness is merely an expression of fear. People fear they won't get what they want. The most dreadful and unattractive person only needs to be loved, and they will open up like a flower.

구스타브: 무례한 사람은 겁에 질려있어.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면 두려워해. 겁에 질려 보기도 싫은 사람들도 사랑만 받으면 꽃처럼 피어나기 마련이야.

 

그리고 호텔을 물려준다.

 

M. Gustave: If I die first, and I almost certainly will, you will be my sole heir. There's not much in the kitty, except a set of ivory-backed hairbrushes and my library of romantic poetry, but when the time comes, these will be yours.

구스타브: 내가 죽거든, 거의 틀림없이 죽을 것이니, 호텔은 네 소유야. 돈은 얼마 남아있지 않을 거야. 머리빗과 낭만주의 시집 정도나 있겠지. 어쨌건 시간이 되면 호텔을 넘겨줄게.

 

영화에서 무스타파는 젊은 작가에게 구스타브를 회상한다.

 

Mr. Moustafa: [on M.Gustave] There are still faint glimmers of civilization left in this barbaric slaughterhouse that was once known as humanity... He was one of them. What more is there to say? To be frank, I think his world had vanished long before he ever entered it. But I will say, he certainly sustained the illusion with a marvelous grace.

무스타파: [구스타브에 관해 설명하며] 이 험한 세상에도 한때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알려진 문명의 희미한 잔상이 아직 남아있죠. 구스타프는 그런 사람이지요.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면 사람 사는 세상다운 세계는 그가 들어오기도 전에 사라졌어요. 하지만 구스타프는 남에게 베풀면서도 세상은 아직 아름답다는 환상을 몸으로 버티고 있었지요.

 

유럽을 사랑하는 웨스 앤더슨 감독은 구스타브를 통해 사라져 가는 유럽의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표현하고자 애썼던 소설이 스테판 츠바이크의 생각을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대박 흥행을 기록하는 감독은 아니지만 정말로 좋아하는 팬심이 단단하며 어떤 영화를 개봉해도 그 팬들은 따라다닌다. 또 그 영화에만 단골로 기꺼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 출연하는 배우들이 정해져 있을 정도로 그의 작품성을 좋아하고 예술 작품 제작에 참여를 원하는 열혈 배우층까지 있을 정도다.

 

깊어가는 가을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이 아름다운 영화를 관람하며 옛 유럽의 노스탤지어에 한 번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Trail #1

 

Trail #2

 

The Grand Budapest Hotel Interview-Wes Anderson (2014)